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히텐슈타인 가문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오스트리아 [[빈(오스트리아)|빈]] 인근에서 발흥한 귀족 가문으로, 12세기 초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시조인 후고 폰 리히텐슈타인이 가문의 세력을 점차 확장시켰고, 1608년 카를 1세가 [[신성 로마 제국 황제]] [[마티아스(신성 로마 제국)|마티아스]]로부터 공위를 인정 받으면서 리히텐슈타인 공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. 리히텐슈타인 가문은 신성 로마 제국의 귀족으로서 과거 [[합스부르크 제국]]에 속했던 현재의 [[오스트리아]], [[슬로베니아]], [[체코]] 등에 있었던 여러 지역에서 많은 영지를 소유하고 있었다. 그러나 이는 황제의 직속 제후로서가 아니라 다른 제후의 봉신 자격으로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'직속 제후'이어야만 하는 [[제국의회(신성 로마 제국)|제국의회]] 참가 자격에 해당되지 않았다. 이를 제국직속령(Reichsunmittelbarkeit)[* 영어로는 Imperial immediacy라 한다. 즉 제후와 황제의 중간에 다른 상급 제후를 거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(medium) 황제를 직속 주군으로 모시는(immediate) 제후의 권리라는 뜻이다.]이라 하는데 당시 가문의 당주 [[한스아담 1세]]는 제국의회에 참가권을 가진 직속제후가 되기 위해서 당시 제국직속령이었던 [[파두츠]] 백작령(1699년)과 [[셸렌베르크]] 남작령(1712년)을 구입하였다. 이후 1719년, 신성 로마 제국 황제 [[카를 6세]]가 이 셸렌베르크 남작령과 파두츠 백작령을 합쳐 공국으로 승격시켜주면서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성씨를 따서 [[리히텐슈타인 공국]]이라 이름붙였다. 보통 유럽의 귀족 가문은 성씨를 자신들이 통치하는 영지의 명칭을 따서 짓는 경우가 많아 가문의 성씨를 영지인 리히텐슈타인 공국에서 따온 것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실제론 반대로 통치가문인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성씨에서 리히텐슈타인 공국이라는 국호가 유래한 것이다. [[오스만 제국]], [[사우디아라비아]]와 같은 사례. 리히텐슈타인이라는 성씨 자체는 리히텐슈타인 공국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[[빈(오스트리아)|빈]]에 있는 리히텐슈타인 성의 이름에서 유래했다. 이 성은 13세기에 상실되었다가 19세기에 복구하여 다시 가문의 소유가 되었다. 어쨌든 이로써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안톤 플로리안 1세는 [[신성 로마 제국]]의 제후가 되었고, 공가는 리히텐슈타인 공국을 지배했지만 리히텐슈타인이 아닌 [[합스부르크 제국|오스트리아]]에서 활동했다. 이렇게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로 얻은 영지라, 가문이 리히텐슈타인 공국만을 다스리게 된 현재 상황에 비춰보면 상당히 아이러니한 사실이지만 당시에는 상술했듯이 이미 [[보헤미아 왕국]]에 큰 영지를 가지고 있는 땅부자였던 리히텐슈타인 가문 입장에서는 산골에 쳐박힌 코딱지만한 리히텐슈타인 공국 따위는 제국의회 참가권을 제외하면 크게 부유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영지였기 때문에 가문원 중 1818년까지 리히텐슈타인 공국을 방문한 이가 없었다. 게다가 재위 중인 리히텐슈타인 공이 리히텐슈타인 공국을 처음 방문한 해는 공국 성립 후 100년이 훨씬 지난 1842년이였다. 물론 그나마 처음 방문을 한게 그때라는 거지 공가의 거처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오스트리아 빈에 거주했고 리히텐슈타인 공국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. 1741년 발발한 [[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]]때는 [[요제프 벤첼 1세]]가 리히텐슈타인 공으로서 오스트리아군 기병대를 이끌고 [[코투지츠 전투]]에 참전했다. 1938년에는 [[안슐루스]]로 인해 공가의 주무대였던 오스트리아에서 리히텐슈타인으로 이주하였다. [[제2차 세계대전]] 시기에는 리히텐슈타인의 경제가 휘청이자 경제 회복을 위해 공가 소유의 예술품을 팔았다.[* [[https://www.khan.co.kr/culture/culture-general/article/201812051800001|#]]] 상술했듯이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현재의 체코슬로바키아 [[오파바]] 지역에 1,600평방킬로의 영지[* 리히텐슈타인의 10배에 달라는 크기의 땅이다.]를 소유하고 있었으나 해당 지역은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직할통치를 하자않았기때문에 리히텐슈타인 본토와 달리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 독립이후에는 체코슬로바키아 령으로 넘어갔고, 제2차대전 종전 이후 [[에드바르트 베네시]]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의 베네시 포고로 인해 리히텐슈타인 공가의 영지를 [[체코슬로바키아 제3공화국|체코슬로바키아 정부]]에 전부 몰수당해서 공가의 영지는 [[미니국가]]인 현재의 [[리히텐슈타인 공국]]밖에 남지 않게 되었고 현재까지 리히텐슈타인 공국의 군주 가문으로 재위 중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